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1908 - 1974)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
20세기 바이올린의 양대산맥을 꼽으라면, 하이폐츠와 오이스트라흐를 선택하는데 이견을 없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는 개성있는 명인들이 활동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 하이페츠와 함께 자신만의 바이올린 제국을 구축한 인물이다.

연주스타일에 있어서도 하이페츠와 함께 후배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세기 초기 하이페츠의 등장으로 당대의 명인들이 무대의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하이페츠의 등장은 새로운 바이올린 세계의 구축을 의미하였다.

곧 하이페츠와 동 시대에 살아 그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어야 했던 연주자들에게는 정말 불운했던 시기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 역시 그 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연주자를 꼽으라면, 그가 바로 오이스트라흐이다.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오데사 태생으로, 오데사는 밀스타인 등도 그곳 태생이어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바이올리니스트의 명당인 셈이다.

어린 시절 오데사 음악원의 명교수 스톨랴스키에게 배운 그는 하이페츠로 대표되는 아우어악파와는 다른 러시아 바이올린 인맥을 형성했다. 러시아 연주 양식에는 화려한 기교와 깊이 파고드는 정서의 표현을 그 특징으로 하는 유명한 '아우어파'라는 전통이 있는데, 그의 스승인 스톨랴스키도 그 흐름을 탄 사람이어서 오이스트라흐도 아우어파의 전통을 가진 연주자이지만 그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네오 아우어파Neo-Auer'라고 불린다.

1935년 지네트 느뵈 다음으로 비에니아프스키 콩쿨에서 2위를 차지하고, 193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제1회 이자이콩쿠르(현재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29세의 나이로 우승하여 전 유럽에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나, 2년후 발발한 세계대전 대문에 1945년까지 동구와 소련에 국한된 활동을 했다.

그는 피아노의 길렐스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소련이 정책적으로 서구에 소개하는 연주가로 지목되어 많은 혜택을 누렸다. 피아노의 오보린, 첼로의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실내악 활동도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하이페츠가 차갑고 냉정한 연주라는 평가에 비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인간미 넘치는, 그리고 깊이 몰입해 갈 수 있는 연주라는 평을 듣는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표현이 풍성하고 여유로 왔으며, 하이페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그 선율이 서정적이었다.

하이페츠가 주는 카리스마 때문에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에 버금가지만 2인자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물론 그런 평가가 연주해석과 스타일에 대한 편협한 평가이지만, 애호가들은 순위를 매기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사실 하이페츠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의 비교 대상이었고, 그와 필적할만한 연주자들은 비교 평가되었다. 오이스트라흐외에 대표적인 비교 인물로 밀스타인을 들 수 있다.

오이스트라의 음반들은 대개 정상의 연주로 평가받는다.
그 레퍼토리의 명반을 2-3개 선택한다면 대다수의 오이스트라흐의 음반은 이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애호가들이 즐기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클뢰탕스-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EMI),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BS), 브람스 협주곡(클렘페러-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멘델스죤협주곡(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BS), 시벨리우스협주곡(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BS) 등은 대표적인 협주곡 음반이다.

특히 피아노의 오보린과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타나 전집은 불후의 명반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음반은 녹음에 따라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방세계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음반사와 작업한 것이며(이것이 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에서 녹음된 음반들이다. 특히 러시아에서 녹음된 음반들은 러시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된 실황이 꽤 들어 있어, 러시아 레퍼토리에서는 러시아적인 음악해석과 생생한 현장감을 맛볼 수 있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내면적이고 깊은 사색과 절제미가 돋보이며, 폭 넓은 레가토를 적절히 구사한다. 그의 기교는 결코 현란한 바이올린 테크닉을 추구하지 않고 조형력, 톤, 힘의 세 요소가 균형을 갖춘 것이다. 또 아름답고 뉘앙스가 풍부한 소리에 낭만적이지만 절제된 맛이 있는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Yehudi Menuhin, Arthur Grumiaux, David Oistrakh


David Oistrakh and Arthur Grumiaux

누구에게나 그 따뜻한 마음을 넉넉히 나누어 줄줄 아는 그런 연주자이다.
그의 레퍼토리는 폭넓어 바로크에서 고전-낭만에 이르는 대다수의 작품들을 다루었다. 아마 하이페츠를 제외하고는 오이스트라흐 만큼 폭넓은 레퍼토리와 음반을 남긴 바이올리니스트도 드물 것이다. 그는 특히 동시대 작곡가들의 것에도 관심이 많아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카발레프스키, 하차투리안과 같은 유명한 현대작곡가들의 것을 즐겨 연주했고, 동시대의 작곡가들은 그의 연주에 감동하여 오이스트라흐에게 다수의 작품을 작곡, 헌정하였다. 곧 오이스트라흐 때문에 창작된 현대작품들이 대다수였다.



하이페츠와 모든 면에서 비교되지만,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오이스트라흐가 비교되지 않는다.
하이페츠가 이제는 무대의 뒤편으로 물러난 에릭 프리드만과 유진 포더외에 현역 연주자로 피에르 야모얄 정도를 꼽을 수 있는 것에 반해, 오이스트라흐는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바이올리스트중의 한 사람인 기돈 크레머와 올레그 카간 등을 길러냈으며, 역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는 그의 제자이자 아들이다.

그는 만년에 지휘자로서 활동을 하였는데, 자신의 지휘로 녹음한 협주곡은 그의 연주스타일만큼이나 구성력있고 깔끔하지만, 일반 관현악 작품에서는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자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