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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ary Russian Soloists of The 20-th Century

(20세기 전설적인 러시아 명 연주자들)

 

모두 100개의 앨범으로 되어 있는 대작입니다.

우연하게 선배의 집에 놀러 갔다가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 채

한 켠에 놓여 있던 이 앨범집을 발견하고는

 

"대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쩌고 하면서 애원 반 협박 반으로

빼앗아 온 앨범집입니다.

 

이 앨범집에 대한 문학수님의 평가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콘서트 고어’(Concert Go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주회장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반면에 음반을 수집하면서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을 ‘레코드 컬렉터’(Record Collecter)라고 부릅니다. 좋은 연주를 수록한 음반이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요. 음악 애호가 집단을 단순하게 구분한다면, 대략 이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콘서트 고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쓸데없는 짓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음악이란 결국 시간예술이고,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만이 감상의 정도(正道)라는 관점이지요. 연주자들 가운데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1964년에 36세로 요절한 재즈 관악기 연주자 에릭 돌피는 “연주가 끝나면 음악은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말했지요. 그는 자신의 레코딩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3년 전 타계한 명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녹음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요. 덕분에 그가 남겨놓은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 등은 ‘명반’ 혹은 ‘준명반’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물론 연주 자체도 훌륭하지만, 희소성이 한 몫한 덕분이기도 하지요.


레코드 컬렉터들 중에도 ‘오로지’ 음반으로만 음악을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연주회장의 실황보다는 음반과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더 빠져들지요. 수년 전 프랑스 파리의 음반 벼룩시장에서 한 50대 남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을 재즈 애호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에게 “오늘 저녁에 올림피아 극장에서 소니 롤린스 연주회가 있던데요. 저는 거기 갑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난 연주회장에 가지 않아요. 오직 음반으로만 들어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군요.


저도 음반 수집과 오디오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30대 때였습니다. 한 10년 동안 오디오 바꿈질을 반복했고, 이른바 ‘오디오 파일용 음반’이라고 부르는 음질이 뛰어난 CD들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서 그만두었습니다. 첫번째는 경제적 이유였고, 두번째는 취향이 변한 탓이었지요.


그 10년 동안 저도 연주회장을 찾아다닌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즐겨 찾습니다. 그렇다고 오디오를 내다버린 것도 아니지요.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정착한, 저렴한 가격의 낡은 오디오를 애장하고 있지요. 음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엔 음질 좋다는 CD에 별로 관심이 가질 않습니다. 직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있는 LP의 음색에 오히려 마음이 끌리지요. 또 기계적으로 잘 편집된 고해상도 음반보다는, 연주자의 실수와 객석의 기침소리, 박수소리와 환호성까지 생생하게 담긴 실황음반에 애착이 가곤 합니다.


최근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에서 내놓은 ‘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연주자들’은 100장의 CD로 이뤄진 전집입니다. 그런데 반가운 것은 그 100장 모두가 실황 음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러시아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유하고 있던 음원을 브릴리언트가 라이선스로 출반한 것이지요. 저는 요즘 이 CD들을 하루에 한 장씩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수록된 연주자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국보급’들입니다. 일단 러시아 피아니즘의 쌍벽으로 꼽히는 스바아토슬라프 리히터와 에밀 길렐스의 실황음반들에 먼저 손길이 갑니다. 두 사람은 네이가우스(피아니스트 부닌의 조부) 밑에서 피아노를 같이 배운 ‘동문’입니다. 서방세계로 먼저 진출했던 이는 길렐스였지요. 하지만 뒤이어 진출한 리히터가 오히려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경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 시대를 공존한 라이벌임은 분명합니다. 이밖에 3장의 CD에 담긴 라자 베르만의 리스트 연주, 1990년 카네기홀 공연 이후 서방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예프게니 키신의 10대 시절 연주도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음원들입니다.


피아노의 리히터와 길렐스처럼, 바이올린에서 쌍벽을 이뤘던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는 각각 10장의 CD에 담겼습니다. 물론 첼로의 라이벌도 있지요. 얼마 전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와 97년 세상을 떠난 다닐 샤프란이 그 주인공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호방하고 음량이 풍부한 첼로를 들려준 반면에, 샤프란은 섬세한 ‘시인’의 연주를 들려줬지요.


당신이 ‘음질’을 중시한다면 이 전집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연주실황이 담긴 탓에 어떤 음원들은 음질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음질보다 러시아 거장들의 ‘생생한 육성’을 원한다면 이만한 연주를 만나기 어려울 성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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