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토벤의 작품세계

 

   베토벤은 바흐/헨델/하이든/모차르트와 같은 선배 대작곡가들을 많이 연구하고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누구의 음악과도 다른 음악을 창조한 작곡가였다.

 

   베토벤 작품의 특징은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지만, 일단 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양식적인 특징은 견고한 구축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악상 전개 능력이다. 베토벤은 선배인 모차르트나 후배인 슈베르트처럼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악상과 멜로디를 옮겨 적었던 작곡가들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선율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곡가가 아니라 선율을 발전시켜 나가는 측면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한 작곡가이다.

 

   그래서 베토벤 음악의 주제 자체는 의외로 소박하고 단출한데, 이런 단출한 선율이나 악상, 심지어 음표 몇 개 수준의 주제를 가지고도 큰 규모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변주곡을 작곡했을 정도로 주제를 변화시키고 전개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클래식을 어느 정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그런 주제로 이런 기막힌 전개를 해내는 거지?" 싶은 대목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베토벤이 선율미가 없는 작곡가라거나, 딱히 전개가 필요하지 않은 짧은 음악을 못 썼다는 말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기본적으로 이런 평가는 어디까지나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정도 되는 지존급 작곡가들하고 비교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평범한 2류급 작곡가들 수준에 눈높이를 두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자.

 

   여튼 베토벤의 음악이 이런 튼튼한 구축력을 가진 덕분에 교향곡이나 협주곡 소나타 등의 분야에서 긴 연주시간과 큰 악기편성을 갖춘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3번, 9번 교향곡이나 장엄미사, 후기 현악 4중주와 같은 장대한 작품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계속 연주가 이루어지는데도 지루하거나 장황함을 느낄 틈이 없다. 쉴 새 없이 주제가 변화하고 분위기가 바뀌고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가 바뀌고 곡조가 바뀌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이후 등장하는 큰 규모의 작품들, 특히 연주시간이 1시간이 훌쩍 넘는 장대한 교향곡의 원조가 바로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등장 이후 후배 작곡가들은 예외없이 그를 철저하게 연구하였으며 한편으로 베토벤이라는 너무나 높은 산을 넘어서 어떻게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할 것인지가 지상과제가 되었다.

 

   한편으로 베토벤의 음악은 후기로 갈수록 화성 위주의 빈 고전파 양식에서 벗어나서 대위법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베토벤의 대위법은 이 분야의 본좌인 바흐와는 방향이 크게 다른데, 바흐가 기존의 대위법에 충실하면서 이를 극한의 경지로 이끌고 간 음악가라면 베토벤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격과 파격을 추구한 음악가였다.

 

   바흐의 푸가가 기존의 대위법 형식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줬다면, 베토벤의 푸가는 기존의 푸가 형식에서 벗어난 변칙적인 전개나 새로운 수법의 도입을 통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음악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대위법 외에 즉흥곡/환타지풍의 변주양식(주제의 주선율이나 화성 등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시키는 변주방식) 도 자주 활용되었다.

 

   그래서 베토벤의 대위법은 바흐처럼 엄격한 성부의 맞물림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체로 헨델식으로 각 성부가 상당히 자유롭게 변화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의 마지막 4악장의 푸가나 장엄미사의 크레도/대영광송 및 생애 최후기에 작곡된 현악사중주 등에서 베토벤식 대위법의 진수를 볼 수 있다.

 

   디아벨리 변주곡에서 베토벤은 각기 대선배들에 대한 예우를 담아 24변주에선 바흐의 오르간 작품집을 연상케 하는 전통적인 푸가를, 32변주에선 헨델풍의 정력적인 푸가를 거의 3중 푸가에 가깝도록 자유롭게 전개하며 밀어붙인다. 또한 반골기질로 가득찬 작곡가답게 음악적 효과를 위해 대위법 규칙을 의도적으로 많이 벗어난 전개방식도 자주 보여준다. 같은 푸가라도 바흐의 푸가와 베토벤의 푸가가 많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 베토벤 작품의 분류법

 

   베토벤은 매우 중요한 작곡가이기 때문에 작품 분류법이 상당히 많고 분류의 근거도 복잡하다. 다음의 작품 분류법의 취지와 특성을 참고하여 아래의 작품들을 살펴보자.

 

2.1.1. Opus(Op.)

 

   베토벤의 작품 중에 출판되어 공식으로 작품 번호(Opus)가 붙은 작품은 Op.라는 기호와 작품번호를 붙여서 표시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베토벤의 유명한 작품 또는 중요한 작품 대부분은 당연히 이 공식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베토벤 생전에 부여된 공식 작품 번호는 135번 까지였는데, 그의 사후에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던 3곡이 작품 번호가 붙어 출판되어 현재는 138번까지 있다. 하지만 실제 곡 수는 138개보다 훨씬 많은데 그 이유는 한 작품 번호로 두 개 이상의 곡을 묶어서 출판한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Op.1에는 세 곡의 피아노 삼중주가 있고 Op.2에는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가 있다. 특히 Op.108의 스코틀랜드 가곡은 무려 25곡이 수록되어 있다!!

 

2.1.2. WoO

 

   공식번호가 붙은 작품 외에도 공식 번호가 붙지 않은 작품들이 다수 있는데 이는 WoO로 분류한다. 이 WoO라는 기묘한 기호는 독일어로 Werke ohne Opuszahl(Works without Opus number)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것으로 말 그대로 Opus 번호가 안 붙은 작품, 간단히 말해 번외라는 뜻이다. 이 WoO 계열 작품들은 베토벤 생전에 출판된 것도 있고 출판되지 않은 것도 있고 미완성이거나 스케치로 남은 작품들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 WoO는 공식목록이 아니기 때문에 학자마다 조금씩 목록이 다른데, 현재는 주로 1955년에 수립된 킨스키 목록(Kinsky catalog)을 참조한다.

 

   WoO 계열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작곡자나 출판사에서 공식번호를 붙이지 않은 만큼 opus 계열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편이며 연주 횟수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WoO 라고 해서 무조건 가볍게 여기면 안되는 것이 WoO 59의 바가텔(엘리제를 위하여)과 같은 유명한 작품이나 WoO 80의 32 변주곡처럼 중요한 작품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주곡이나 칸타타를 비롯한 몇몇 장르는 양적인 측면에서 공식발표된 것보다 WoO 쪽에 압도적으로 많다.

 

   한편 WoO 계열의 작품에서는 악기/기법 등에 대한 베토벤의 여러가지 음악적 실험이 나타나거나 독창적인 양식을 확립해 나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연주가치와 별도로 베토벤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들이기도 하다.

 

2.1.3. Hess

 

   작곡가이자 바순연주자였으며 열성적인 베토벤 연구가였던 스위스 출신의 빌리 헤스(Willy Hess,1906~1997)가 빈 시절 초기나 그 이전(본 시절)에 작곡되었던 베토벤의 초기 작품들, 또는 그간 발굴되지 않았던 미완성 스케치 등을 모아서 헤스 번호(Hess Number)를 붙여 발표하였다. 그런데 헤스 번호가 붙어 있는 작품 상당수는 이미 WoO에도 포함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WoO와 헤스 번호가 동시에 붙어 있는 작품의 경우에는 관례상 헤스번호가 아니라 WoO로 표시한다.

 

2.1.4. Biamonti

 

   비아몬티 목록은 이탈리아의 음악학자 지오바니 비아몬티(Giovanni Biamonti, 1889-1970)가 작성한 목록으로 그가 사망하기 2년 전인 1968년에 발표되었다. 이 비아몬티 목록은 당시에 알려진 베토벤의 모든 완성작과 미완성작, 원본과 수정본, 심지어 10마디 정도의 스케치까지 철저하게 모아서 작곡 연대순으로 나열한 것으로  음악 감상의 측면 보다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진 목록이다. 비아몬티 번호는 849번까지 있는데 이는 미완성작이나 스케치 등을 모두 합쳐서 1968년까지 확인된 베토벤의 작품 수가 849개라는 뜻이다. 최근에 베토벤을 비롯한 대작곡가들의 초기작품이나 미완성 작품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비아몬티 목록도 나름 인지도를 얻고 있다.

 

비아몬티 목록 1 비아몬티 목록 2

 

   비아몬티 목록과 같은 분류법은 작곡자의 모든 작품을 빠뜨리지 않고 포함시킬 수 있고 연대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세월에 따라 작곡 양식의 변화나 발전 양상을 확인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 대신 작곡 연대가 잘못 알려졌거나 새로운 작품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처리하기 난감해지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비아몬티 사후 베토벤 일부 작품의 작곡연대가 수정되었으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악보도 몇 개 발견되었는데, 이를 모두 반영할 경우 기존에 통용되던 비아몬티 번호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2.1.5. Anh

 

   기타 베토벤과 관련된 상당히 특이한 목록으로 Anh 목록이 있는데, 이 Anh 번호가 붙은 작품은 사실 베토벤의 작품이 아니라 베토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거나 베토벤이 작곡했다고 사칭한 위작의 목록이다. 베토벤이 실제로 작곡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예나 교향곡이 당당히 Anh 목록 1번에 올라 있다. 베토벤이 워낙 위대한 작곡가이다 보니 심지어 위작들까지도 분류번호를 갖는 영광을 갖게 되었는데, 실제 분류의 목적은 연주보다 베토벤 연구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보면 된다. 이른바 베토벤의 소나티네로 알려져 소나티네 앨범에서 친숙한 2작품(Anh.5 1번 - G장조, 2번 - F장조. 둘 다 2악장 구성) 역시 작풍이 베토벤의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사실상 위작으로 분류되고 있다.

 

자료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