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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와 교향곡 10개

오작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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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말러.

 

   말러의 교향곡은 곡마다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단일 은하로 구성된 균일한 유기체가 아닌 여러 은하가 공존하는 다양성의 총아라 할 수 있다. 말러의 교향곡은 그리스·로마의 대리석 조각과 같은 작품이 아니다. 그곳에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시민 세계가 천연덕스럽게 이식되어 있고 심지어 교향곡의 본질인 기악 예술이 아닌 성악 예술까지 깊게 침투하여 콜라주적인 대통합을 이룬다. 

   소위 ‘거인’이란 부제로 유명한 교향곡 1번은 숱한 길거리 음악의 요소와 자신의 가곡 인용을 통해 말러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작곡가는 자작시에 붙인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에서 곡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있다. 교향곡 개시 악장의 원칙인 소나타 형식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는 1악장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의 2번째 곡 ‘오늘 아침 들판을 건너가네’의 주제를 자유롭게 패러프레이즈한 랩소디에 가깝다. 3악장의 중간 부분은 가곡집의 4번째 곡 ‘그녀의 푸른 두 눈동자’를 기악으로 편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곡을 교향곡의 기본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말러는 분명 슈베르트의 교향곡 ‘미완성’을 일종의 롤 모델로 하는 것 같다. 

   2악장에서는 알프스 지역의 민속 무곡 렌들러를 채택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의 정체성을 표방하다가도 3악장에서는 유태인의 혈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동요 ‘자크 형제(수사)’를 장송 행진곡으로 패러디한 3악장은 초연 때부터 논란의 중심이었다. B급 정서의 하위 음악을 기악 음악의 최고봉인 교향곡에 거리낌 없이 도입했던 작곡가의 무모함은 지금의 관점에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심벌즈의 굉음으로 폭발하듯 쳐들어오듯 시작하는 4악장은 더욱 혼란스럽다. 리스트의 단테적인 교향시에서 힌트를 따온 듯한 지옥의 장면, 차이콥스키와 쇼팽을 염두에 둔 듯한 달달한 칸타빌레, 바그너 <파르지팔>에서 따온 장엄한 코랄이 어울려 천국의 빛나는 승전가로 향하는 구성은 이전 어떤 작곡가도 상상한 적 없는 ‘인용 천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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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와 그의 여동생 유스티네 말러.

 

 

민요의 세계와 강하게 연계된 ‘뿔피리 교향곡’

 

   교향곡 2번 ‘부활’과 3번은 삶과 죽음에 관한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은 작품이다. 두 곡 모두 자신의 창작 민요집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곡을 전용하거나 패러디하고 있다. 2번 3악장은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성 안토니우스’를 교향악적으로 풍자한 것이고 4악장은 ‘근원의 빛’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3번 3악장은 초기 가곡 중 ‘여름의 교대’에서 아이디어를 따오고 있고 5악장은 ‘세 천사가 노래를 불렀다’의 피아노 반주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것에 해당한다. 이렇듯 말러 초기 교향곡의 아이디어는 작곡가 자신의 가곡집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말러의 초기 교향곡 특히 교향곡 2번, 3번, 4번을 소위 ‘뿔피리 교향곡’으로 부르는 데 있어 누구도 강하게 반발할 수 없으리라.

   교향곡 2번과 3번은 성악을 교향곡에 사용하는 두 대조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2번은 작곡가가 벗어나려 했으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결국 같은 문법을 사용하게 되어 버렸다. 즉 기악으로 도입하여 합창이 가미된 피날레를 통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다. 반면 3번은 성악이 4악장과 5악장에 사용되고 곡의 결말이라 할 수 있는 사랑에 관한 6악장은 오로지 기악으로 마무리된다. 심지어 소년 합창단과 여성 합창단은 5분밖에 되지 않는 5악장에만 등장하여 합창을 키치적인 천국을 묘사하는 데 잠깐 사용하는 데 만족한다. 즉 합창을 사용하는 방법론에 있어 교향곡 3번은 더욱 급진적이라 할 수 있다. 

   ‘뿔피리 교향곡’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교향곡 4번은 이전 작품과 분리된다. 3번까지 팽창 일로를 걷던 말러는 돌연 작고 귀여운 교향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4번 교향곡은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것일 뿐이다. 곡의 연주 시간은 여전히 1시간에 달하고 플루트 주자에 4명을 편성하는 등 오케스트라의 편성도 결코 작지 않다. 4번에서 말러는 합창을 배제하고 소프라노 독창만을 피날레에 기용했는데 민요의 세계를 동경하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천상의 삶’을 인용한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민요의 세계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만 1번부터 3번까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곡 중간에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다. 교향곡의 마무리는 언제나 독일적인 웅장한 코랄이 담당했던 것에 반해 교향곡 4번은 민요의 세계로 조용히 소멸된다. 즉 4번은 ‘뿔피리 교향곡’의 마무리인 동시에 그 세계와의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말러는 이전 교향곡과 차별화되도록 대위법을 더욱 치밀하고 섬세하게 설계했는데, 특히 2악장은 ‘신 음악에 감염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라 할만하다. 온음 높게 조현된 일종의 ‘프리페어드 바이올린’과 호른을 비롯한 온갖 목관의 솔로가 근대 오케스트라의 ‘큐비즘’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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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의 구스타프 말러와 예술가들.

 

빛과 어둠의 중기 3부작

 

   말러는 5번부터 7번까지 대위법과 오케스트라의 인기를 한 차원 더 높게 끌어올리는 걸작을 창조해 낸다. 민요의 세계와는 점차 거리를 두고 안녕을 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비록 교향곡 5번의 1악장 및 2악장은 트로트를 연상시키는 유태인의 구슬픈 가락이 주를 이루고 3악장은 다시금 렌들러의 활력에 기대고 있지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말러적 변용인 4악장 ‘아다지에토’와 바흐의 대위법에 대한 심도 높은 연구가 반영된 듯한 5악장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라는 중요한 ‘은하’와의 분리를 선언한다. 

   교향곡 5번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에게 극한의 난곡이다. 특히 바이올린 파트가 어렵기로 악명이 높으며 수석 트럼펫과 수석 호른 주자의 기량은 숨을 데가 없다. 지휘자는 1악장에서 불규칙한 3연음의 리듬을 전체적으로 조율해야 하며 2악장의 현기증 나는 템포의 ‘밀고 당기기’에 온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렌들러와 왈츠가 뒤섞인 3악장은 조금만 방심해도 오케스트라 전체가 휘청거릴 것이며 아다지에토 악장은 리듬이 없는 음악처럼 무정형의 시간 감각을 요구한다. 개시 악장부터 피날레까지 어느 한 악장 편히 넘어가는 곡이 없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와의 온전한 작별은 6번 ‘비극적’에서 완성된다. 이 곡의 1악장은 강박적인 군대 음악의 리듬으로 시작하며 주요 주제들은 성악적인 아이디어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메커닉한 스케르초는 악령의 댄스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서 독일·오스트리아의 서민 춤곡의 요소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1악장의 군대 음악은 나무 해머가 활약하는 피날레에서 만개하여 잔혹한 결말을 형성한다. 

   반면 교향곡 7번의 혼성주의는 6번의 균일성과 구별되는 큰 대조를 형성한다. 7번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내다보는 무차별적인 혼합으로 여전히 연주자와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 곡의 피날레는 앙리루이 드라그랑주가 말한 대로 ‘가장 놀랍고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악장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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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교향곡 10번을 끝내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51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사후 오스트리아의 그린칭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최후의 긍정 그리고 만년 3부작 

 

   말러는 그간 중기 3부작에서 억눌렀던 성악의 욕구를 교향곡 8번에서 한꺼번에 터뜨린다. 이 곡은 말러 교향곡 중 가장 거창한 곡이자 서양음악사상 유례가 드문 대편성의 곡이다. 5관 편성의 오케스트라에 2군의 혼성 합창단, 소년 합창단, 8명의 독창자, 오프 스테이지 브라스 밴드가 가세하고 곡의 처음부터 파이프 오르간이 활약한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부르는 성악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특히 2군의 혼성 합창단의 사용은 바흐의 모테트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연 성악 교향곡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시금석과도 같은 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말러에게 최후의 긍정이었다. 이 미증유의 작품을 쓴 후 장녀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10년간 황금 시기를 이끌었던 빈 궁정 오페라에서는 안티 캠페인이 벌어져 불명예스럽게 퇴임하게 되었다. 게다가 의사로부터는 심장이 안 좋아 이대로는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경고도 받게 된다. 장녀의 죽음으로 인해 부부 사이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이때 말러는 반쯤 허깨비처럼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티롤 지방의 남쪽 지금은 이탈리아 돌로미티가 제공하는 돌산의 웅장함 속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고 그곳에서 기꺼이 새롭게 출발했다. 

   <대지의 노래>, 교향곡 9번 그리고 1악장만 온전히 남은 미완성 교향곡 10번까지 이들은 환멸과 도피 그리고 허무의 송가라 할 수 있는 ‘만년 3부작’을 이룬다. 특히 말러의 성숙미는 교향곡 9번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곡은 랩소디 스타일의 자유분방한 개시 악장으로 시작하여 두 개의 풍자적인 악장을 거쳐 꺼져가는 인생의 촛불을 그린 듯 소멸하는 마지막 악장에 이른다. 비록 9번 4악장 마지막의 비올라의 음형은 비올라의 모놀로그로 시작하는 10번 1악장의 고독한 세계로 연장되나 그것이 말러의 마지막 숨결이었다. 51세를 일기로 말러의 ‘우주’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게 되었다. 


※ 이 글은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SPO> 2024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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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말러와 교향곡 10개 오작교 25.08.28.10:3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