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rte Collection

고음악·시대악기 전문 레이블 Vivarte의 명반들을 한데 모은 대규모 박스세트로, 절판되었던 희귀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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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rte Collection Box에 붙이는 말

오작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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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물의 시대가 마지막 절정기에 접어든 것일까? 이제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기획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이 바로 이번에 발매된 소니 비바르테(Vivarte) 시리즈이다. 짧지만 황홀했던 이 고음악 전문 레이블은 음반 시장이 마지막으로 빛을 발했던 90년대를 상징할 만한 존재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에 CBS를 인수한 소니는 클래식 음악에 야심차게 뛰어들면서 전방위에서 도이치 그라모폰(DG)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고음악 분야에서도 DG의 아르히프(Archiv)에 맞설 만한 독자 레이블을 창설하기로 결정하고 비바르테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책임자로는 텔덱의 알테베르크(Das Alte Werk)를 이끌던 고음악 전문 프로듀서이자 직접 제온(Seon)이라는 고음악 레이블을 운영한 경험도 있었던 볼프 에릭슨 (Wolf Erichson)을 영입해서 전권을 맡겼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까지 1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걸쳐 많은 정상급 연주자들이 대중적인 레퍼터리부터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숫자의 음반을 내놓게 된다. 양과 질, 학구적인 깊이, 제작 비용 등 모든 면에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으로, 옛 음악을 그야말로 마음껏 탐험했던 기록물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은 에릭슨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귀스타프 레온하르트, 카위컨 형제들, 보프 판 아스페런, 안너 빌스마, 파울 판 네벨 등 플랑드르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타펠무지크, 루츠 키르히호프, 브루노 바일 등이 가세한 형국이며, 은퇴한 빌스마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까지도 여러 레이블로 흩어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거장들이다.
 
   일단 외부적인 면부터 보자면, 종이 상자에 60장의 음반이 종이 슬리브에 담겨 있으며, 200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내지 책자에는 원래 음반의 내지 해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실려 있다. 내부를 감싼 플라스틱 완충물에서 석유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이 아쉽지만 종이 상자를 견고하게 잘 만들었으며, 음반 표지도 상당히 선명한 편이다.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작업한 내지 번역은 수준이 들쑥날쑥하다. 꽤 훌륭한 번역도 있지만 가령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상상력을 총동원하며 읽어야 무슨 말인지 겨우 추측할 수 있는 수준이며, ‘쇼트(Schott)’의 콜레기움 무지쿰을 ‘스코티시’라고 번역한 것(74페이지) 같은 심각한 오류도 군데군데 보인다. 그렇더라도 그 많은 내지 해설을 모두 번역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해야겠다.
 
60장에 달하는 음반 중 상당수가 지금은 폐반되어 구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반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음반은 아마도 레온하르트와 카위컨 3형제가 뭉친 텔레만의 파리 사중주 전집이 아닌가 싶다. 하젤쳇과 소너리(Virgin), 플로릴레기움(Channel Classics) 등 좋은 연주들이 있지만 어느 한 악기도 튀지 않는 참된 실내악적 조화와 텔레만의 혼합 양식에 대한 완벽한 이해라는 점에서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이다.

 

   이 밖에 레온하르트가 제온 시절부터 꾸준히 진행했던 역사적 오르간 시리즈의 일부인 ‘북독일 오르간 음악’과 ‘프랑스 오르간 음악’이 있는데, 특유의 견고하고 엄격한 해석과 오르간의 독특한 음색이 깊은 인상을 주지만 한 장 정도는 하프시코드 연주(가령 베크만, 프로베르거 선집)를 선택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아스페런이 상상력을 불어넣어 연주한 ‘네덜란드의 하프시코드’ 음반으로 만족하자. 바르톨트 카위컨과 아스페런이 연주한 C.P.E.바흐의 플루트 소나타집 역시 카위컨의 다채로운 음색과 명쾌한 균형감각이 빛나는 명연이다. 카위컨이 에발트 데메이에르와 함께 녹음한 플루트와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집(Accent)과 함께 듣는다면 대전환기 음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양적으로 가장 많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빌스마와 라르키부델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들은 바로크부터 낭만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터리를 녹음했는데, 이번 시리즈에도 독주와 실내악 연주를 합쳐 무려 19장의 음반이 포함되었다. 다만 빌스마의 독주 음반들은 두 번째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집을 비롯해서 요스 반 이메르셀과 함께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집, 비발디 첼로 소나타집, 보케리니 첼로 소나타집 등 아직까지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반이라는 점에서 관심은 덜 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연주 자체는 대단히 훌륭해서, 현대 첼로 연주와 전혀 다른 논-비브라토 주법과 생기 있는 포르타멘토, 미묘하면서도 다양한 색채가 훌륭하다. 특히 빌스마는 녹음 기술이 생긴 이래 최고의 보케리니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램버트 오키스와 함께 연주한 브람스 첼로 소나타집 역시 디스코그래피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연주이며, 특이하게도 피콜로 첼로와 오르간 편성으로 연주한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집은 시대악기 연주가 역사주의의 함정에 갇혀있다는 일부 오해를 무색하게 만드는 상상력의 향연이다.

 

   라르키부델리의 녹음도 하나같이 훌륭한데, 옛 바셋클라리넷의 그윽한 음색과 자유로운 장식,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투명하고 가벼운 앙상블을 들려주는 모차르트 클라리넷 오중주, 트리오집을 제일 먼저 꼽고 싶다. 이 밖에 멘델스존 8중주가 없는 것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강건하고 다채로우며 다이내믹이 변화무쌍한 슈베르트 현악 6중주와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하이든 사중주 및 트리오, 그리고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도 모두 좋은 연주들이다.
 
   한편 대중적인 매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고음악 전문 레이블이라는 차원에서 가장 상징적인 연주자는 아마도 파울 판 네벨과 후엘가스 앙상블이 아닐까 싶다. 학자이자 지휘자인 네벨이 유럽 각지의 음악 문헌을 뒤져서 준비한 중세-르네상스 음악 시리즈는 실로 놀라운 업적으로, 이런 전문적인 프로젝트를 이렇게 단기간에 벌인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탈리스의 ‘스펨 인 알리움’을 비롯한 대편성 폴리포니 합창곡을 모은 ‘승리의 유토피아’는 모든 면에서(작곡가를 하이든으로 잘못 인쇄한 실수만 빼고) 르네상스 합창 음반의 최고 명반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얼마 전에 ‘비밀의 미로’라는 제목의 15장짜리 박스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단연 이 시리즈의 백미로 꼽아야 마땅하겠지만, 두 박스물을 모두 구입한 애호가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겠다.
 
   비바르테의 정규 바로크 관현악 레퍼터리를 도맡았던 잔 라몽과 타펠무지크도 적지 않은 음반이 포함되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여전히 역동적이고 생기가 넘치는 연주로, 개인적으로는 헹엘브로크, 가디너, 아르농쿠르에 앞선 시대악기 최고의 명연이라고 생각한다. 헨델의 합주 협주곡이나 ‘수상 음악’, 비발디의 ‘사계’는 워낙 경쟁반이 많아서 특별한 명연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나름의 매력이 충분하며,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라몽)은 이상하리만치 과소평가된, 혹은 덜 언급된 명연이 아닐까 싶다. 랜든의 새로운 완성 판본과 퇼처 소년 합창단의 질박한 음색이 묘하게 어울린 모차르트 레퀴엠은 시리즈의 별미라고 할 수 있으며, 브루노 바일이 지휘한 하이든 교향곡집 두 장 역시 아쉽게도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던 이 탁월한 시리즈를 추억하는 좋은 기념물이다. 바일은 이 밖에 클래시컬 밴드를 이끌고 녹음한 슈베르트 교향곡 5,6,7,8번과 독일 미사곡에도 등장하는데, 미사곡이라면 E플랫장조 미사곡(D950) 음반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류트 연주자 루츠 키르히호프의 독주 음반이 무려 여섯 장에 달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메르셀의 독주나 롤란드 윌슨의 음반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키르히호프의 음반이 대부분 폐반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반갑다. 키르히호프는 종종 상상력을 절제하지 못하는 감이 있고 표현이 과장된 경우도 있지만 ‘춤과 꿈에서의 류트’나 ‘궁정 노래’ 같이 직접 주제와 선곡을 짠 선집에서는 음악가로서 최상의 면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프리더 베르니우스와 콘라트 루흘란트의 교회 음악 녹음들이 있는데, 17세기 카톨릭 남부독일의 모테트를 모은 음반은 비교 대상이 없는 귀중한 기록이다. 

 

글,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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